어느 4월, 띤잔이라고 하는 물축제 기간에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손에 바가지나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갑자기 튀어나와서 몸에다가 냅다 퍼붓는다. 말 그대로 물벼락이다. 하지 말라고 손을 내저으니 낄낄거리며 더 한다. 험험,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개 얼치기 수행자에 불과하냉.
물벼락을 피해 다녔건만 기습적으로 나타나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그리하여 돈이나 젖지 않도록 비닐에 싸서 다녔다. 문득 민주화 운동을 위하여 데모진압용 물대포를 맞아 본 적이 없었던 과거의 심적인 부채의식이 일어난다.
수많은 불탑을 다니며 명상을 하였는데 어딘지는 기억이 없으나 어느 불탑 내에서 좌선하고 있으니 갑자기 유체이탈하여 그 먼 석가모니불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흙담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인데 그곳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엄청나다. 화려하고 거대한 쉐다곤사원이나 붓다가 다녀갔다는 만달레이 언덕보다 훨씬 영적인 기운이 강력하다. 과연 세계 3대 불교유적지라고 할만하다.

지금 바간을 회상해 보아도 다른 거대하고 멋진 사원들이 많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이 허름하고 작은 불탑 내부만이 뇌리에 남아있다. 바간을 관광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기에….
불탑을 방문하는 그날 아침에 왠지 사탕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넉넉하게 준비해 가지고 갔다. 물론 나는 사탕을 잘 먹지 않는다. 불탑은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모두 각각 감시꾼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 어떤 어린 여성이 나를 보자마자 마치 맡겨놓은 듯이 캔디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리하여 가지고 간 캔디를 다 주니 바간에서 출토된 불상이라면서 사라고 나에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불상인데 무척 마음에 끌린다. 얼마냐고 물으니 20달러만 내라고 한다. 불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릴 겸 또 그 불상과의 인연을 테스트해보려고 10달러에 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발길을 돌리니 나를 불러 세우며 가져가라고 한다.
물론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겠지만 내 불교예술품 수집상도 아니고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또 어떠리. 마음에 들면 그 뿐….그런데 볼수록 신비감이 감돈다.

바간의 불탑군은 도굴꾼의 수탈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몰라도 바간의 불탑 내에는 목이 잘린 불상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런데 이 바간은 다른 불교유적지와는 달리 그 옛날 불향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하여 무척 애착이 가는 곳이다. 내 개인적인 견지로 볼 때 불교성지는 신심이 절로 우러나게 하고 지기와 천기가 강하며 마음의 집중이 잘 되는 곳이다. 사실상 인간이 조성한 화려하고 거대한 불교건축물은 별다른 감흥이 없기에 볼 때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