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괘효사
괘효사의 기원(起源)은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한데 송대의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이르길 “그 괘는 본래 복희씨가 그린 바이며 그 괘사는 곧 문왕이 만들었고 효사는 곧 주공이 달았으며 공자가 《역전》 중의 십익(十翼)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북송시기의 구양수는 《역전》 중의 계사전 이하는 모두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하였다. 현재 많은 학자는 《역경》이 본래 상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서적이며 《역전》은 곧 춘추전국시대에 서적을 이루게 된 것이나 《역경》과 《역전》은 모두 한 사람이 완성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무릇 괘사와 효사는 《주역》이란 서적 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곧 그 기본바탕이 되는 자료가 주로 점을 친 기록에서 유래하였으며 나중에 편저자의 편집을 거쳐서 매 괘와 매 효의 후면에 토를 달았다.

@ 괘효상
《주역》의 괘상(卦象)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팔괘가 되고 또 하나는 64괘가 되며 일반적으로 64괘는 팔괘를 따라 변하여 온 것이다. 이로 인하여 괘상의 기원(起源)을 탐구하는 것은 또한 곧 팔괘적인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인들의 다양한 설법이 있는데 그 중에 비교적 큰 영향력을 가진 3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복희씨가 象을 관찰하여 괘를 설립했다는 설인데 이는 《계사전》에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문자설이며 팔괘의 괘상(卦象)이 되는 ☰、☱、☲、☳、☴、☵、☶、☷는 고대에서는 처음에 天、地、風、雷、火、水、山、澤 등의 문자로서 분별하였으나 나중에 변천하여 비로소 팔괘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획괘설(劃卦說)이 있는데 卦象에 의하여 보면 무릇 팔괘는 陰(⚋)과 陽(⚊)의 두 부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체적인 방법은 곧 ⚋이나 ⚊을 따라 세 겹으로 분별하여 조합하면 8종의 卦象 즉 팔괘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계사전》에서 이르길 “易에는 태극이 있고 이는 양의(兩儀)를 생한다. 양의에서 四象이 생기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긴다.”고 하였는즉 이들 과정이 추출된다. 그 중에 “양의(兩儀)”란 ⚋과 ⚊을 가리키며 “四象”이란 ⚌、⚍、⚎、⚏을 가리킨다.
이 ⚋과 ⚊의 두 부호적인 기원에 관하여 근현대의 학자들은 많은 추측을 제출하였다. 가운데 하나로 우리의 조상은 남녀의 생식기를 숭배한 것으로 인하여 음양은 생식기를 숭배하던 시대의 산물로써 “⚊”은 남근을 상징하고 ⚋은 여자의 생식기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괘효상의 기원에 대하여 최근까지 비록 많은 영향력 있는 의견들이 제출되고 있으나 이 3종적인 설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곧 하나의 만족할 만한 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장래에 더욱 많은 자료가 발견되면 비로소 더욱 확실한 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