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주로 양대 학파로 나누게 되는데 이는 곧 상수학파와 의리학파이다. 의리학파는 팔괘와 64괘적인 괘명에 내포된 뜻에 따라 괘효사와 괘효상을 해석하며 상수학파는 팔괘가 상징하는 바의 물상(物象)을 중점적으로 괘효사와 괘효상을 해석한다.
이 양대 학파의 대립은 《역전》 중의 취상설(取象說)과 취의설(取義說)에서 유래한다. 무릇 《역전》 중에 있어서 이 두 종류로서 해석하는 예는 당연히 동시에 존재하며 또한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나 점차 《주역》의 경전에 대한 해석은 물론이고 기타 이론에 대해서도 모두 자신만의 특색을 갖추면서 아울러 장기적인 논쟁을 벌려왔다. 현재 의리학파는 《주역》의 철학사상을 중시하여 철학적인 가치를 발휘하고 있으며 상수학파는 《주역》을 사용하여 점을 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1) 상수학파(象數學派)
《주역》 중에 “象”은 세 가지의 뜻을 내포한다. 첫째는 팔괘와 64괘적인 형상이고, 둘째는 팔괘가 상징하는 바의 사물적인 형상이며, 셋째로는 괘사와 효사 중에서 제출되는 구체적인 사물의 형상이다. “數” 또한 세 가지의 뜻을 내포한다. 첫째는 괘 중에서 각 효(爻)의 속성적인 수(數)이며, 둘째는 효위의 순서적인 수(數)를 표시하며, 셋째는 점치는 과정 중의 일종의 계산방법이다.
상수학파는 《주역》 중에서 그 象을 가장 중요시 하며 괘효사가 모두 象으로써 기초가 되니 고로 象과 더불어 그와 관련이 있는 數적인 각도에 의거하여 《주역》을 해석한다. 또한 《주역》은 당연히 길흉화복을 점치는 가장 오래 된 점서(占筮)라고 인식한다. 상수(象數)방면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며 점괘는 장차 그 응험이 어떠하든지 간에 혹 지극히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응한다. 다만 여기서 응함은 어떤 사건에 대하여 사람이 원하는 바대로 응함이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맹점과 집착을 화해함으로써 인생에서 직면하는 각종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한다.

(2) 의리학파(義理學派)
“義理”에서 의(義)는 곧 의의이며 리(理)는 곧 도리이다. 義와 理는 형상이 없는지라 능히 단독으로 존재하지 못하니 문자나 혹은 도형적인 묘사를 거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이에 비로소 능히 나타난다.
의리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무릇 왕필과 한강백이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왕필은 상수학파의 폐단을 보고 의리학파를 창립하였으며 그 후에 한강백이 왕필의 의리지학을 진일보하여 발휘하였으며 장차 역학을 더욱 사변(思辨)적인 학문으로 이끌었다. 그 후 당(唐)대의 공영달이 왕필과 한강백의 《주역》에 주(註)를 달아서 《주역정의》를 저술하였으며 그리하여 의리학이 줄곧 과거시험에서 정통적인 역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의리학파는 卦象의 本身적인 의의를 추구하지 않고 단지 《주역》의 기본적인 의리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길흉화복에는 흥취를 느끼지 않는다. 무릇 의리방면을 명백히 하는데 있어서는 곧 64괘의 괘사와 386개의 효사가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기를 요한다. 의리역으로 괘를 해석하는 방법을 얻는데 있어서는 많은 사람이 주희의 《역학계몽》을 참고로 하는데 이와 더불어 반드시 《계사전》을 숙독하여야 한다. 의리역은 곧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를 깨달게 한다.
무릇 의리방면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백하게 자아수련 즉 지혜、능력、덕행을 닦는 것이며 이 세 가지를 갖추어 나가면 최종적으로 “천도(天道)에는 길흉이 없다”는 경지를 체득하게 되고 매 괘、매 효가 모두 좋다고 느끼며 항상 평안하게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