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섬의 이아 마을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일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고 델포이로 향했다. 델포이 신전에 가서 명상하고 있으려니 문득 신녀가 영상으로 나타나서 그리스를 떠날 때까지 자기가 따라다니며 지켜주겠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왜 신전을 지키는 신녀가 신전은 지키지 않고 하필이면 나를 지켜 준다고 하는 걸까? 그 당시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으며 내가 헛 것을 보고 들었나 생각했다.
그 후에 스파르타로 가서 명상을 하고 미스트라로 넘어 가려고 하였으나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는데 마침 일본여행객을 만나서 그와 더불어 개인택시를 잡아서 합승하였다. 그날 따라 비가 많이 오고 있었으며 그리스는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여서 도로가 꼬불꼬불하며 절벽이 많다. 그런데도 이 택시기사가 이 험한 빗길을 140km의 속도로 달린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두 번이나 속력울 줄이라고 권했지만 들은 체도 안 한다. 소위 우리나라로 치면 총알택시였던 것이다.
갑자기 차바퀴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전방의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더니만 택시가 가드레일을 치고 날아간다. 그 찰라적인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뿐….. “만약 밑에가 절벽이면 나는 죽을 것이며 땅이면 살 것이다. 신녀여! 나를 보호하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택시가 추락한 곳은 기가막히게도 과수원이였고 지면의 높이가 가드레일과 별 차이가 없었다. 착지하고는 나무가 또한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으며 땅은 나무를 심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울퉁불퉁하게 파인 흙무더기로 쌓여 있어서 속도를 줄이기에는 판타스틱한 조건이었다. 서커스 하듯이 나무를 피해서 요리조리 운전하더니만 드디어 큰 나무를 들이박고 차는 멈추었다. 그리 속도를 줄이다가 정지하였는데도 워낙 속력을 내며 달린지라 본네트가 절반이나 찌그러졌다. 운좋게도 택시가 밴츠였기에 그 정도로 그친 것이리라….
곧이어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하였는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를 못하겠다. 아마 추락할 때 심한 충격을 받았나 보다. 들 것에 실려서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사고경위에 대한 경찰의 질의에 간단히 답변한 후에 침대에 누운 상태로 그대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에 있던 젊은 여의사가 초음파진단기로써 처음에는 허리를 문지러더니 다시 똑바로 누우라고 한다. 단지 허리만 아프다고 하니 시키는대로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지를 내리라고 하더니만 나중에는 팬티까지 내리라고 하는데 이해하기 힘들지만 뭐 환자이니 의사가 하는 말을 들어야지 별 수 있나. 그래서 팬티를 조금 내리니 조금 더…더…계속 내리라고 하여 음모가 완전히 다 보일 때까지 내렸다. 그러고 나니 진단기로 털 부위를 계속 문지른다.
이 힘든 시국에 이 변태같은 뇬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도대체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이런 짓을….화가 치밀어 참다 못해 일어나서 항의하려고 하는데 허리통증으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 때 마침 남자의사가 들어오고 그 때서야 갑자기 그 행동을 멈춘다.
병원의 진찰 결과는 별 문제가 없어서 퇴원하였으며 그 택시기사와 찾아온 그의 부모가 숙소를 그냥 잡아 주었다. 그러나 걷기가 어렵고 누울 때도 허리가 아프며 밥숟가락을 들어도 통증을 느끼니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젠 더 이상 결가부좌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다. 어찌해야 하나? 외교공관에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며칠 지내보기로 하였는데 하루하루 좋아지더니 3일만에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이는 쉽게 죽지말고 좀 더 개고생하여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후에 떠나라는 신의 뜻인가 보다. 그 후로 더욱 정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고 세월만 쏜살같이 흐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