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동안 훈자에서 머물다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파수로 향했다. 저녁 7시가 되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훈자는 사방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 동력 소리에 밤에는 명상을 제대로 못하였으나 여기는 밤이 되니 암흑 천지에 너무 고요하다. 마치 천지개벽 직후 같은 적막감이 감돈다.
침상에 앉아 명상하니 여느 명산 못지않은 상쾌한 기운이 감돈다. 이곳을 내 토굴로 삼을 수 있으면 평생을 칩거할 수도 있으리라. 며칠 뒤 서스펜션 다리로 갔다. 처음 다리를 건널 때는 쫄아서 양손으로 옆에 쇠줄을 잡고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자칫 발을 헛디딜까 봐 근육이 긴장하여 무척 힘들었다.
건너가서 한동안 명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현지인은 양손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늠름하게 걷고 있지 않은가? 아! 수행자라고 자처하면서 모양새 빠지게 좀비같이 엉거주춤 건넌 것이 쪽팔린다. 그리하여 돌아올 때는 나 또한 양손을 사용하지 않고 감각에 의존하여 다리 위를 걸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다리가 흔들리며 본능적으로 공포가 또다시 나를 위협한다. 왜 이 몸뚱이를 나와 동일시하는 에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며칠 뒤 빙하에서 명상하고 또 산의 기운을 받기 위하여 가이드를 한 명 구하여 7시간 걸리는 세칭 윤즈밸리 트레킹을 떠났다. 산길은 험한데 초입부터 이 저질체력으로 인하여 몇 발자국을 걸으니 숨이 차고 어지러우며 또 두통이 심하고 토할 것 같아서 걷지를 못하여 계속 쉬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엄습한다. 가이드가 이러다가 죽으니 그만 포기하고 하산하자고 권한다.
내 가오가 있지…. 산에서 객사하면 축복이라고 여기는 터에 차마 그럴 순 없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낭떠러지에서 수차례 발이 미끄러졌다. 나 참 안팎으로 나를 코너에 몰아붙이네. 이건 고난도 극기훈련이나 다름없구만…. 이 꼴을 보니 가이드가 더욱 놀라고 불안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다시 자꾸 하산을 권한다. 작년에 나같이 무리하게 등반을 고집하다가 여기서 외국인 한 명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지금 송장을 들쳐 매고 하산할까 봐 걱정하나 보다. 소심하긴….
거의 2시간 30분의 사투 끝에 드디어 빙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빙하는 처음인데 규모는 생각보다 작으나 산 중턱에 이런 빙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빙하 앞에 앉아서 거의 40분을 명상하였는데 워낙 험하고 외지라서 사람이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탓에 청량한 기운이 들어온다. 난생처음 맞이하는 특이한 기운이다. 혼자 왔다면 마냥 앉아 있고 싶으나 가이드가 기다리니 그만 일어났다. 언제 다시 올수 있을 려나? 가이드는 또다시 빙하를 보았으니 이제는 정말 그만 하산하자고 보챈다. 그러나 명상 후에 엄청난 기운이 들어온 듯하더니 언제 그리 힘들었는가 모를 정도로 힘이 솟구치며 갑자기 헐크가 된 기분이라 목적지까지 강행하였다.

계속 올라가서 해발 3,700m가 넘으니 경치가 판타스틱하다. 그리고 이제는 산 기운을 받아서인지 초입에 그리 쓰러질 듯 힘들었던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리스크가 크면 마진도 큰 법이며 큰 번뇌가 있어야 큰 깨달음도 얻는다고 했던가? 암튼 세상에 공짜는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