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링의 숙소에서 창문을 열면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캉첸중가 산이 가까이 보인다. 내 방은 복도 끝에 위치하며 비수기라서 투숙객이 없어서 조용한지라 창문을 열고 집에서와 같이 옷을 벗고 매일 명상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케체팔리 호수가 가고 싶어서 교통편을 알아보니 마침 합승 지프를 타고 2시간이면 그곳까지 간다고 한다.
막상 호수에 도착하니 저녁이 다가오는데 여긴 깊은 산중이고 주변에 마을이 없어서 숙소를 찾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런데 웬 성실해 보이는 청년이 다가오며 자기 숙소를 소개한다. 600루피라고 하니 가격도 저렴하다. 그리하여 으슥한 산길을 따라갔으며 거의 15분을 걸어가서야 허술한 가정집 한 채가 보이는데 이건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속의 토굴 수준이다. 너무 조용하고 전망도 좋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신성한 케체팔리 호수를 갔는데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하다. 이 호수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호수”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민속과 전설이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호수를 산꼭대기에서 보면 발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타라보살 혹은 시바신의 발 모양이라고 하며 이와 달리 현지인들은 파드마삼바바가 발로 찍어 낸 호수라고 믿고 있었다.
그곳에서 3박 4일을 머물면서 매일 호수를 방문하여 명상하였다. 가족과 인류의 평안 및 행복을 빌었는데 그곳의 기운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문득 공성(空性)이 느껴진다. 국내외의 호수를 많이 다녀 보았지만 이곳만큼 무한한 마음의 평화를 느낀 곳은 없다. 경치는 크게 볼 것이 없으나 그 기운이 너무도 맑고 좋다.
그런데 도가 깊어지면 마장도 커진다고 했던가? 3일째 명상을 끝내고 눈을 떠 보니 흰 양말이 온통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다. 이게 무슨 조화냐? 양발을 벗어보니 어느새 큰 거머리 3마리가 양발 속에 들어와서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전혀 느낌이 없었는데 그리 물리다니 신기하다. 또한 벗어놓은 신발에도 작은 거머리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그 얘기를 하니 거머리가 산에만 거주하며 집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들도 남의 나와바리를 침범하지는 않나 보다.
그 호수 입구에는 규모가 큰 비구니 절이 있는데 하루에 여러 번을 재차 방문하여도 항상 내부가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이 그곳에 상주하는 노 비구니 스님에게 그 문의하니 우선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차나 한잔하자고 권한다. 차를 마시며 내내 침묵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웬 어린 여승을 불러서 열쇠를 주며 법당문을 열어주라고 명한다.
법당 안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명상하였는데 그 청정한 기운이 여느 천년고찰 못지않다. 이 절 역시 파드마삼바바를 주불로 모시고 있다. 시킴은 대부분 지역을 탄트라의 닝마파가 주도하고 있는지라 파드마삼바바는 어느 법당을 가더라도 안치되어 있다.
20년 전 중국의 어느 길거리에서 웬 특이하게 생긴 조그만 불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누군지도 모른 채 구입하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파드마삼바바 불상이었다. 세상에 우연은 없나 보다.
시킴에서 4주 이상 머물면서 펠링, 육솜, 타시딩, 라방글라, 남치, 강톡 등지의 불교성지를 모두 다녔지만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케체팔리 호수는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지 않고 내 마음에 담아가지고 와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사진으로 담은 풍경은 사진을 다시 볼 때만 기억이 나지만 마음에 담아 온 풍경은 언제라도 떠올리면 사진을 보듯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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