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피라미드를 방문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하니 여기가 한 국가의 수도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곳곳에 폐허가 된 공터와 쓰러질 듯한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마치 종전 후 한참 복구작업 중에 있는 도시 같다. 숙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내부의 불이 꺼졌다 켜졌다가 하며 떨껑거리는데 갑자기 추락할 것만 같아 불안하며 숙소의 창문을 여니 곳곳에 벽이 허물어져서 공사 중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삭막하기 그지없다.
다음 날 쿠푸왕 피라미드를 방문하기 위하여 카이로에서 13㎞ 떨어진 사막 고원으로 이루어진 기자지구에 갔다. 도착하여 피라미드로 가는 도중에 전설에 등장하는 거대한 스핑크스가 보이는데 별다른 흥취는 느끼지 못하였다. 드디어 거대한 3개의 피라미드가 보이고 한가운데 위치하는 쿠푸왕 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내부로 들어가니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서 습기로 인하여 무더웠으며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데 땀이 절로 난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3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에서 쿠푸왕의 방은 가장 위쪽에 있다.
한참 올라가니 넓은 홀이 있으며 이곳이 바로 쿠푸왕의 방이다. 그러나 왕의 방 내부에는 단지 붉은 화강암으로 제작된 빈 관이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육수로 온몸을 샤워하며 쇠 빠지게 올라왔는데 볼거리가 전혀 없는지라 이 대목에서 크게 실망한다.
그러나 세계의 유수한 명상가들이 쿠푸왕 피라미드에서 명상을 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석진 한 쪽 벽에 자리 잡고 앉아서 명상에 들었다. 갑자기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4,000년 전 피라미드를 만들 당시로 날아가는 듯하며 강력하고 신비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엄청난 기운이다. 유명한 사원이나 명산대천도 아닌데 어찌 이런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곧이어 쿠푸왕으로 보이는 이집트 파라오가 나타났는데 그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숨이 막힐 정도이다. 나에게 계속하여 진지한 표정으로 일장연설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통역관을 대동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그때 느낀 영적 기운을 떠올리면 흥분된다. 지금까지 숱한 유명한 성지를 다녀 보았지만 그 피라미드와 같은 왠지 모를 특별한 기운을 느낀 곳은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그곳의 관리인이 그만 일어나라고 한다. 만약 저지하지 않았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앉아 있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