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가을, 무릉공항에서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거의 3시간을 달린 끝에 홉스골 호수에 도착하였다. 호수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다음 날 새벽에 일출을 보며 명상을 하려고 나갔더니만 웬 큰 셰퍼드가 계속 따라온다. 자리 잡고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그 개가 혀로 내 얼굴과 입술까지 핡는다.
이넘의 날라리 개가 돌았나? 어디 감히 용안에 함부로 혀를 들이밀다니…. 혀로 내 입술을 핡으니 더럽다는 생각에 불쾌감이 확 엄습한다. 고요하게 명상해야 할 시국에 마음의 집중을 분산시키니 마장이네.
그런데 개가 입술을 핡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감각에만 집중하니 그리 짜릿하고 감미로울 수가 없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이다. 그 후에도 가지 않고 간헐적으로 핡더니만 나중에는 아예 내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있다. 수행하는 견공(犬公)이구먼…. 더 이상 불쾌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어진다.
호숫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의 기운이 강력하다. 백두산 천지는 신비롭고 경이로웠으며, 티베트의 남쵸호수는 신비하고 영적인 기운 강하였으나 이곳은 세상을 뒤덮을 만한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했던가? 과연 칭기즈칸과 같은 걸출한 영웅이 나올 만한 나라이다.

홉스골 호수에서 배를 타고 소원의 섬에 들어갔다. 섬은 아주 작으나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멋진 곳이다. 섬은 둘러보지 않고 자리 잡고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어디선가 목탁을 치며 천수경을 독송하는 염불소리가 확성기를 통하여 울려 퍼진다. 이 평화로운 곳에서는 소음공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왕 소원을 비는 섬에 들어왔으니 아내가 이다음에 내 송장을 치워주고 떠나 길 간절히 빌었다. 중고시장에 나를 내놓으면 바로 품절될 거라고 하였더니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일단 써보면 당장 반품 들어올 거라고 응수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과분하게도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산다. 만약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돌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끈 떨어진 연신세가 되어 갈수록 비참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릉공항에서 출발하여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지 못하여 마침 한국어가 유창한 스튜어디스에게 물어보니 직행하는 교통수단은 없으니 자기네 승무원 전용 소형봉고차에 같이 타고 가자고 권한다.
차 내부를 둘러보니 비좁아서 내가 타면 다들 불편할 것 같아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그 배려심이 너무 고마워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강인하고 카리스마적인 용모이다.

테를지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거북바위에서 명상하기 위해 바로 옆에 파오를 잡았다. 비수기라서 사람이 없는지라 큰 파오를 며칠 동안 나 혼자 차지했다. 바위에서의 명상은 이곳이 최고로 마음의 집중이 잘 된다. 미국 세도나는 비록 볼텍스가 강력하고 판타스틱하였으나 여기는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서서히 내면에서 솟구치는 영적인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아… 그립다. 다시 찾아가서 그 기운을 느끼고 싶다.
한낮에 그곳 현지인들이 신체가 간신히 통과할 만한 바위 틈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물론 뚱뚱하면 그 사이에 끼여서 빠져나오지도 못할 정도의 공간이다. 나도 덩달아서 따라갔는데 한참을 내려가니 거북바위의 정확히 중간쯤에서 동굴과 같은 넓은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명상을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거북바위 주변의 지기(地氣)까지 빨아들여서 그 동굴에서 품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이 바위의 혈자리였던 것이다. 정보가 없어서 전혀 몰랐던 이러한 명당장소를 현지인 덕분에 우연히 도착 첫날에 바로 알게 되어 며칠을 틈만 나면 찾아갔다.

孤鳳정사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