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에 세계 최고의 휴화산이자 설산인 케냐 근처에 있는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산을 갔었다. 숙소에서 오후에 할 일이 없어서 잠시 외출을 하려고 하니 주인이 놀라면서 여긴 강도가 많으니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돈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하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무조건 뒤에서 망치나 흉기로 뒤통수를 내리찍어서 기절시킨 다음에 몸을 뒤진다고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흉악한 놈들이구만….
킬리만자로산으로 가는 도중에 야생동물들을 한번 만나보기 위하여 케냐에 위치하는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을 방문하였는데 답답한 버스안에서 동물을 관찰하는 우리나라 사파리투어와 달리 두껑이 열린 지프차로서 드넓은 초원을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달리니 기분이 정말 상쾌하다.
지프차를 타고 가다보니 마침 숫사자가 막 암사자의 등에 올라타고 허니문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희귀한 광경을 보자마자 우리 가이드가 바로 무전기를 사용하여 주변의 지프차에게 알리니 다른 지프차들이 타이어에서 타는 냄새가 나도록 개떼같이 몰려왔다.
그런데 불과 몇 분밖에 안 지났는데도 다른 지프차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못내 아쉬웠는지 사방에서 “repeat” , “one more time”이라고 함성을 지르니 숫사자가 뻘줌하고 쪽팔렸던지 냅다 도망쳐 버렸다.
킬리만자로산은 마랑구 게이트에서 출발하였는데 그 당시 등산 입장료만 70만원이 넘었다. 지금은 거의 200만원이 된다고 한다. 산입구에서 원시림같은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니 천기(天氣)가 강한 히말라야하고는 달리 강력한 지기(地氣)가 느껴졌다.
그런데 마지막에 있는 키보산장(4,700m)에서 드디어 정상을 앞두고 고산병이 더욱 심해졌다. 숟가락을 들 힘 조차 없고 너무 졸리며, 머리를 드릴로 뚫는 것처럼 심하게 아프다가 나중에는 숨쉬기도 힘들어졌다.
그 날 초저녁에 다들 일출을 보려고 떠났는데 여기까지 어렵게 와서 홀로 침대에 드러누워 있으려니 우울하다 못해 참담하였다.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멋지게 명상 한판 때려보려고 했건만 골대 앞에서 슛을 날려 보지도 못하고 자빠진 이 심정을 누가 알랴! 딱 내가 국립보호구역의 숫사자 꼴이구만…여러 그룹 중에서 하필 낙오자가 나 혼자이니 당췌 쪽팔려서 어디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어렵네.
하산할 때 가이드가 응급환자용 들것을 준비하겠다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내 비록 화려하게 비상하는 봉황이 아니라 비맞은 장닭 신세가 되었지만 송장이 된다면 몰라도 차마 드러누워서 하산하고 싶진 않았다. 한 발씩 옮길 때마다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산을 내려오니 점점 좋아지더니 중간 쯤 내려오니 언제 그랳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산병에는 장사가 따로 없다. 산신령이라도 지팡이를 짚고 서둘러서 하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