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노래나 악기연주 그리고 영화나 그림 등 음악이나 예술은 그 당시에는 심금을 울리며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나 그 감동은 단지 그 때 뿐이다. 돌아서면 금방이 잊혀지며 오로지 좋았다는 기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영혼을 울리는 침묵의 파장은 비록 은은하나 그 여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명상수행이나 영적 수행을 하는 자는 최소한 이 말뜻을 인정하거나 동조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전부터 어디에서 진정한 도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전국에서 도꾼들이 개떼같이 몰려든 것이다. 도인을 만나서 잠시나마 침묵의 파장을 느낄 수만 있다면 홀로 수행하며 닦은 10년의 내공보다 더 유익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는 것조차 진실이 아니거나 아닐 수밖에 없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매트릭스》는 아마도 불교의 공사상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이러한 강력한 침묵의 파장을 느낀 것은 달라이라마를 통해서였다. 그 전까지는 온 세상이 달라이라마를 관음보살의 화신으로서 활불이라고 추앙하며 인도나 티베트 사원 곳곳마다 불상과 더불어 달라이라마 사진을 옆에 세워놓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나 그래도 별로 감흥이 없었고 한번 친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연히 이 번 생에서 만나지 못하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인도 다람살라로 향했다. 달라이라마가 계시는 곳의 종무소에 찾아가서 담당자에게 말을 거니 귀찮아 하면서 성의 없이 이메일로 면담신청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다시 어떤 양식을 보내야 하는지 물으니 바쁜 척하며 대꾸도 안 한다. 한참을 소파에 앉아서 답을 기다렸으나 모른 척한다. 이건 마치 그냥 알아서 조용히 꺼지라는 태도가 아닌가?
거지가 구걸을 와도 이렇게 박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스팀이 치솟는다. 인내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그리하여 벌떡 일어나서 그 담당직원에게 한마디 따끔한 훈계를 던지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내면으로 들어오며 그냥 앉아 있도록 내 몸을 찍어 누른다.
숱한 세월을 산에서 비바람 맞으며 앉아 있었어도 느끼지 못했던 너무도 강력하고 평온한 공성적인 기운이며 천상천하를 다 가진 듯한 뿌듯함이다. 이미 더 이상 달라이라마 친견은 내 관심 밖이었다.
잠시 후에 그 기운이 서서히 퍼지며 그 사무실을 뒤덮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찰나에 정확히 그 접수하는 담당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긴장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이메일은 필요 없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그 후 연락이 와서 드디어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게 되었다. 그 많은 친견자들 가운데 유독 나한테만 저승에서 온 것도 아닌데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몇 번이나 “오 코리아!”를 외쳤으며 기다렸단 듯이 활짝 웃으면서 반갑게 악수를 청하였다.
악수를 하며 그가 이마를 내 손등에 갖다 대는 순간 여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운이 느껴진다. 단지 학승으로만 여겼던 달라이라마에게서 이러한 엄청난 내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그 기운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며 직접 느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그 이후 달라이라마에게서 받은 그 느낌은 항상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다.
무릇 만날 사람은 만나지고 성사될 일은 성사되며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애써도 실패하니 모든 세상사는 인연 따라 흘러가는 법…. 그러하니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정답인 듯하다. 다만 진인사(盡人事)하지도 않으면서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은 뻔뻔스러운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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