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종교는 권위적이고 우월한 위치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마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희소성과 값어치가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세 개신교는 루터가 일반 민중도 읽기 쉽게 번역한 성경책을 보급하기 전까지는 일반인은 오직 교회나 성당에서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읽어주면서 설교하는데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가?
불교 또한 불경이 지나치게 압축적이고 뜻이 너무 난해하여 원문을 읽으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절에 가서 고명한 스님의 설법을 들어야 했으며 입만 열면 중생제도를 외치는 근엄한 스님 앞에 불자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뚬모가 속하는 밀교는 더욱 폐쇄적이다. 그리하여 주로 진정한 비전은 글로서가 아니라 구전(口傳)으로 은밀하게 내려왔으니 과연 밀교(密敎)라는 이름값을 한다. 세칭 뚬모 혹은 툼모는 반드시 스승의 관정을 받고 먼저 기초 수련을 거친 후에 이미 뚬모를 완전하게 성취한 스승의 축복과 가피 하에 수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취할 수가 없으며 혼자 수련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는 삼세 중에 속하는 전생을 믿는 종교이며 전생을 믿지 못하면 내세 또한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만약 자신이 전생에 뚬모수행자였다면 어떠할까? 현재 그 전생을 기억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타고난 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대부분 하근기는 근기 자체를 부인하나 어느 분야든 일반인은 3번을 다시 태어나도 따라잡지 못하는 걸출한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뚬모는통상적인 요가나 명상과는 달리 영적인 부분이 더욱 중시되는 수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적 성취와는 시간약속을 할 수 없는 것이 큰 맹점이나 다만 어느 한순간에 터져서 그 비밀의 문이 열리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공(空)하다고 알면 마음의 평화와 육체적인 건강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뚬모를 성취하면 이러한 심신의 건강을 얻게 되며 더 이상 제석천왕도 부럽지 않다. 티베트에는 뚬모를 성취하여 무수한 불자에게 공양을 받는 뚬모의 달인이 있다.
진리는 말로써는 증명할 수도 하지도 못하니 실제로 몸으로 보여주는 것 많큼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남들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뚬모의 신통력 앞에 대중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존경심이 일어나서 앞다투어 재물을 싸짊어지고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리라. 사실상 홀로 수행하여 나와 같이 초급적인 단계에 이르러도 많은 육체적인 지병이 없어지고 또한 마음의 안정을 얻는데 만일 단계가 높아지면 오죽 하겠는가?
그러나 좋은 것은 극소수만이 기득권을 누릴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재 누구나 사용하는 인터넷 웹주소 www 는 개발자가 자신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무료로 오픈하였기에 인터넷의 획기적인 보급을 가져온 것이다. 진정한 보시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가 아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분야든 수련과정에서 항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도 특히 뚬모를 홀로 수행한다고 해서 위험하다고 여기면 이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다. 기껏해야 골병들거나 또는 통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찮은 일에 많은 노력을 들이면 이는 미련한 짓이며 마치 바가지를 쓰고 물건을 사는 것과 같으나 뚬모는 비록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그 반대급부가 너무도 막대하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나의 졸저인 “뚬수행법”을 구입하여 조금 흉내 내다가 아무 변화도 없으니 금방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최소한 1,2 년은 매일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전생의 뚬모수행자였다면 뚬모의 영열은 반드시 단전에서 뜨겁게 솟구치며 일단 한번 일어난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으니 언제든지 타오르게 할 수 있다.
대개 보통 사람들은 남들의 성취는 부러워하면서 그 사람이 그러한 성취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린다. 집착과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 같은 걸음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영열이 온몸을 휘감는데 그로 인한 공성과 지복감은 글을 통하여 얻는 희열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