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터 부친에게 나의 태몽에 관한 얘기를 가끔 들었다. 태몽에서 깜깜한 밤하늘에 산꼭데기에 봉황이 한 마리 내려 앉더니만 온 세상이 환해지며 내가 태어났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 또한 이 세상에서 큰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 후 군복무를 마치고 고시원에서 고시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도솔천궁이 나타났다. 너무도 장엄하고 경이롭고 신비하여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나같은 미천한 인간은 이를 보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속한다고 생각하여 두려워서 발길을 돌리다가 조금 열려있는 뒷문으로 용기를 내서 한번 들어가 볼까 하여 접근하다가 다시 두려움에 떨며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 때 달마대사가 나타나서 세속적인 출세는 다 헛된 것이니 나와 함께 이 문으로 들어가서 영원한 도를 추구하자고 하였다. 나는 그냥 호기심에서 잠시 들어가 보려고 한 것이며 이 적막한 세계에서 도를 추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도망치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펼쳐야 할 큰 꿈이 있다고 외쳤다. 그러자 달마대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이르길 “아직은 너가 때가 되지 않아서 달아나지만 언제가는 나를 간절하게 찾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꿈을 깨는 순간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았으며 직감적으로 공부는 해본들 합격하기는 틀렸다는 것을 느끼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은 결국 합격하지 못했고 잠시 은행을 들어갔으나 현실에 안주하여 남은 인생을 편안하고 단조롭게 살아가기에는 아직 내 가슴속에 피가 뜨거웠고 기백이 넘쳤다. 그리하여 1년 반만에 퇴직하고 이것 저것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뜻을 품었으나 펼치지는 못하였으니 이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서 태백산에 가서 기도나 한번 해보려고 찾아갔다. 밤에 천제단을 올라가니 문득 덩치가 나보다 3배나 큰 12신장이 갑옷을 입고 무장한채 나열하여 허공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나는 원래 의심이 많은 편이라서 논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검증가능한 것만 믿는다. 또 그 당시 나는 전에 신비하고 영적인 체험에 관한 서적은 읽은 적이 있지만 모두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하여 발길을 돌리려고 하는데 이에 더하여 12신장이 나열하고 있는 한 복판에 거대한 관세음보살이 보인다. 귀신들이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 레파토리도 다양하구만….이젠 정말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대한 관세음보살이 점차 내게로 다가오면서 작아지는데 어찌 달마대사로 둔갑한다. 그 순간 예전에 고시원에서의 현몽이 생각났다. 달마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신(化神)으로 알려져 있으니 혹시 해피엔딩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끝까지 추이를 지켜보려고 서 있었는데 마침내 내 앞에서 연기로 화하더니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갑자기 심한 헛구역질이 나와서 고개를 숙이다가 얼굴을 들고 눈을 뜨니 갑자기 천하는 물론이고 천상이 내 것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내 기운이 온 우주를 덮으며 천상의 모든 천신들이 우습게 보이는 자만심이 생겨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는 아마도 찰라적으로 달마와 합일이 되어 달마의 경지를 맛본 것이리라. 내가 체험한 그 경지는 제한된 언어로는 도저히 자세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 후로 아무리 애써 명상하고 기도해도 이러한 영적인 체험은 두번 다시 경험하지 못했다. 이는 아마도 이제 앞으로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니 한번 열심히 해보라고 번들용으로 보여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