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와의 영적 교감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정문 앞 벤치에서 명상하고 있으니 달라이라마가 드디어 악수를 청하고 당신의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영상이 보인다. 그 순간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친견을 접수했던 직원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일 7시에 오라고 한다.
나는 12년 전에 티베트를 노퍼밋으로 간 적이 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퍼밋과 더불어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했고 만약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고 곧바로 쫓겨나야 했다. 그러나 가이드를 데리고 다니면 그것은 단지 관광이지 수행이 안되니 고민스러웠다. 그때 달라이라마가 나타나서 걱정하지 말고 오라는 영이 뜬다. 대개 영이란 자칫하면 자신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 영상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목사는 주로 예수를 친견하고 중은 부처를 그리고 사두는 시바신을 친견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스스로 자화상을 조작하니 종종 삑사리가 많이 난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영을 믿고 과감하게 출발하였다. 칭짱열차에서 3번의 검문을 당하였으나 모두 통과하였고 라싸에 도착하여 모든 숙소에서 숙박을 거절당하여 길바닥에서 노숙해야 할 판에 마침 조선족을 만나서 민박을 하였다. 그리고 포탈라궁, 조캉사원 등 매표소에서 모두 눈감아 주었다. 시가체를 가려고 하니 노퍼밋이라 고속버스표를 팔지 않는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쉐어링 택시가 대기하여 합승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있는 검문소를 역시 무사히 통과하였다.
내가 달라이라마를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구걸을 하거나 친견을 과시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둥지를 잃고 쫓겨난 비운의 법왕이 된 먼 전생의 옛 인연을 위로하고 싶을 따름이다. 세계적인 명성과 수많은 추종자 그리고 노벨평화상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비록 현재는 미천하고 영락한 보잘것없는 단지 짝퉁 수행자에 불과하지만 나의 전생은 이렇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안다. 내일 과연 그가 나를 알아볼지 자못 궁금하다.
오늘은 달라이라마를 만나는 날이다. 어제 밤새도록 몸을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친견하려는 다른 불자들과 더불어 바깥 벤치에 앉아서 오랫동안 기다리니 드디어 달라이라마가 대청마루 앞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으셨다.
대부분의 친견자는 달라이라마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내 차례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가벼운 목례를 하고 그의 눈을 응시하였다. 그러자 그는 내 손을 꽉 부여잡고 내 손등을 이마에 갖다 대며 키스를 하였는데 마치 힘든 상황에서 옛 벗을 만난 듯한 서글픈 눈동자이다.

나 또한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잠시 동안 서로 손을 놓지 못하였으나 뒷 사람들이 기다리니 수행원이 저지한다. 내 뒤로는 벤치에서 대기하는 중에 잠시 대화를 나눈 폴란드 여자인데 달라이라마를 친견하는 순간 감격에 겨워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하였다.
나는 오래 전에 해인사 원당암에서 7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마치고 해인사 종무소를 찾아가서 종정을 친견하고 싶다고 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종무소 직원이 아무나 만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소위 정재계 인사나 유명인사가 아니면 만나 주지 않고 단지 명성과 권위를 보존하며 고요하고 한가롭게 지내겠다는 태도이다.
그에 비하면 달라이라마는 90세에 가까운 노쇠한 몸을 이끌고 친견하려는 누구라도 최대한 만나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행을 실천하려고 애쓰니 그 열정과 자비심으로 인하여 절로 한없이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한다.
백천만겁 난조우……
달라이라마 존자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