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전에 인도를 처음으로 갔었다. 그 당시 인도 사람은 대부분 맨발로 다녔고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기 드물었으며, 거리에는 소떼와 코끼리가 활보하였고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아다녔다.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 무한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문명에서 살짝 비껴난 왠지 모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나라였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구매하려니 엄청난 사람들이 매표소에서 줄을 서 있다. 기차 출발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설령 표를 구입한다고 한들 침대칸을 구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하리라. 그리하여 역장을 찾아가서 부탁하니 외국인이라서 그랳는지 특별히 남겨둔 침대칸으로 바로 탈수 있는 무슨 확인증을 주며 승차 후 결제하라고 하였다.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갠지스강으로 갔다. 갠지스강 앞에서 옷을 입은 시체를 눕혀 놓고 장작불에 태우는데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 피부에 기포가 생기며 사람 타는 냄새가 마치 오징어 굽는 냄새와 똑같이 고소하였다. 시체가 탈 때 웬 연기가 그리 많이 나는지 몇 시간을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그 냄새를 맡으니 며칠 동안 음식 냄새와 구분하지 못했으며 그 냄새가 그 냄새 같았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고 있지만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느껴지며 그때야 겨우 욕망과 집착이 약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날 해가 진 후에 하루 종일 시체를 태우고 내다 버린 강을 배를 하나 빌려서 나 홀로 배를 저어가니 수많은 원혼들의 절규가 들렸다. 무언가를 나에게 하소연하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위로해 줄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아무런 원력이 없었기에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날 밤 알 수 없는 원초적인 고독에 시달리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못 먹는 위스키를 한 병이나 마셔도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며 바라나시 강가에서 들었던 환청이 계속 들렸다. 난생처음으로 혼자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힘들어서 길을 가는 아무나 붙잡고 같이 있고 싶은 심경이 되었다.
다음 날 강가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찬란하게 빛나는 강물결이 너무도 평온하고 황홀하여 넋을 잃었으니 인생의 희비를 갠지스강을 통하여 깊고 강렬하게 느낀 셈이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천지차이 …..깨달음은 이성이나 감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잠시 맛본 영적인 성취를 자신의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시험과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을 때 만이 진정한 자신의 것이며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