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호도협 매표소에 도착하여 표를 구매하고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사설 짐 보관소가 있다. 그곳에 무거운 배낭을 보관하고 다시 나시객잔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가 더욱 올라가니 세칭 깔딱고개라고 칭하는 28밴드가 나온다. 설악산 봉정암으로 올라가는 깔딱고개 만큼 험하구만…. 나는 이젠 나이도 있고 원래 저질체력이나 묘하게도 산을 탈 때 거의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는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구치는지 헐크로 돌변한다.
유명세로 인하여 등산객이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예전에 과연 호랑이가 살살 나돌아 다닐만한 험한 협곡이다. 그리고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풍광 한번 정말 멋지다. 천하의 트레킹 코스로서 손색이 없다.

거의 정상에 이르러 절벽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보슬비가 내리는 중이라서 돌이 젖어 미끄러워서 인지 주춤하며 절벽 밑으로 떨어질 뻔하였다. 그때 돌연히 죽음의 공포가 기다렸단 듯이 엄습한다. 아…. 왜 현실이라고 믿는 이 정황이 사실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본능은 인정하지 않는 걸까?
나의 휘청거린 모습을 보았는지 뒤에서 매점주인이 큰소리로 나를 부르길래 돌아보니 손짓을 하며 빨리 내려오라고 외치는 듯하다. 남의 배려를 무시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닌지라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가는 도중에 틈틈이 마음에 드는 장소에 앉아서 명상하니 마치 공중부양하듯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 또한 업그레이드되며 마음의 집중이 너무 잘 된다.
저녁때쯤에 간신히 차마객잔에 도착하여 1인실도 비어 있었으나 도미토리를 선택하였다. 한 방에 8명이 묵었는데 샤워를 못하여 시큼한 땀 냄새가 방안을 진동하여 숨을 쉬기조차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투숙객이 아무도 없다. 다들 아침 아침 일찍 어디로 출발한 걸까? 옥상에 올라가서 명상을 하니 그 기운이 너무 상쾌하다. 국내외의 많은 명산에서 숙박을 하였으나 이곳의 아침 공기는 특별히 좋다. 아마 나하고 코드가 맞나 보다.
다음 날 티나산장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중간에서 3갈래 길이 보이며 표지판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며 도와줄 자를 기다리니 과연 몇 분 뒤에 한 등산객이 나타나며 중간에 있는 샛길로 가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이상하다. 그곳은 길이 좁아서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 한데 천하의 명산이 어찌 이러한가? 내가 잘못 알아 들었나? 그러나 믿고 그 길을 걸어가니 잠시 후에 큰 길이 나온다. 여태 많은 산을 헤집고 다녔지만 이 호도협 만큼 가슴이 뻥 뚫리게 하는 산은 없었던 것 같다. 만일 우리나라에 이런 명산이 있었다면 틈만 나면 혹은 짬을 내서라도 다녔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