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초 칠라스에서 머물다가 페어리 메도우를 가기 위하여 칠라스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페어리 메도우는 길기트와 칠라스의 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버스기사가 라이콧 브릿지라고 칭하는 웬 한적한 도로에 내려주는데 막상 하차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프를 타고 페어리 메도우 근처 마을까지 가야 하는데 합승할 사람이 없다. 거의 1시간 30분을 기다리니 현지인 그룹이 나타나서 날 보고 자기네가 이미 예약해 둔 지프로 같이 가자고 권한다. 사람이 많아서 좌석이 너무 좁은데 초면의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니 감동이다. 암튼 세계를 두루 다녔지만 파키스탄인보다 친절한 국민은 없었다.
천 길 낭떠러지 험한 비포장길을 달리는데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거의 마을에 도착할 즈음에 갑자기 웬 꼬마가 나타나서 지프를 가로막으며 뭐라고 외치면서 다급하게 손짓을 한다. 이윽고 차가 멈추고 뒤를 보니 아뿔싸! 내 무거운 배낭이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 좁은 험악한 길에서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졌거나 앞서 떨어졌다면 찾지 못했을 텐데 역시 낭가파르바트의 산신령은 나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마을에서 메어리 메도우로 올라가야 하는데 웬 마을 청년이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것은 무리이니 한 당나귀에는 짐을 싣고 다른 당나귀를 타고 가자고 호객행위를 한다.
수행자를 자처하는 터에 올라가다가 죽더라도 그럴 순 없다. 단호히 거절하고 올라가는데 30분을 올라가니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 중년의 나이에 두문불출하다가 뛰쳐나와서 이러는 것이 객기일까? 기초체력의 한계가 와서 정말 죽을 것만 같다. 그냥 한동안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차마 다시 마을로 내려가서 당나귀를 다시 타겠다고 하긴 싫었다. 호랑이는 아무리 굶어도 풀은 뜯어 먹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데 날은 서서히 저녁으로 접어든다. 그때 웬 건장한 사내가 올라오며 문제가 있냐고 물으며 자기는 페어리 메도우에 있는 산장 지배인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만 원을 줄테니 나의 배낭을 대신 들어 달라고 청하여 간신히 해발 3,300m의 페어리 메도우에 도착하였다.
막상 도착하여 고산병과 더불어 혹독한 한기를 느껴서 거위털 파카 및 가지고 간 옷을 다 껴입고 모포를 4장이나 덮었는데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 종일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하루에 짜파티 반 조각으로 3박 4일을 버텄는데 두통으로 인하여 도저히 명상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경치 하나는 절묘하다. 어찌 3,000m 이상의 고지에서 푸른 풀이 무성한 것이 신기하다.

3일 만에 드디어 일출을 맞이하여 낭가파르바트가 위용을 드러낸다. 장엄하다. 흰색은 너무 맑고 깨끗하기에 때묻기 쉽다고 했던가?


추위、몸살、두통으로 인하여 도저히 앉지 못하여 내내 누워서 명상하였으나 그 히말라야의 맑고 깨끗한 기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진한 감동이다. 보이는 경치는 눈으로 들어오나 보이지 않는 기운은 마음으로 들어오는 법…. 무릇 세월이 흘러 그 순간을 돌이켜 보면 경치는 기억이 가물거리나 그때 받은 느낌은 생생하니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마음을 빌어 본다면 그 보이는 것도 다르게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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