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에 머물면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을 한번 가 보기로 하였다. 비록 십계명은 못 받더라도 혹 훈계라도 한번 들어볼까 은근히 기대하였는데 다만 멋진 일출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라 느긋하게 아침에 출발하는 투어를 이용하였다.
봉고차로 거의 1시간 40분을 달려서 산 입구 도착하였는데 우리 팀 네 사람과 가이드 외에는 다른 등산객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 역시 미국 세도나와 마찬가지로 산 전체가 붉은 바위로 덮여있다. 대개 붉은 바위산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발산되나 보다. 올라가는 도중에 멋진 경치는 없고 단지 삭막한 바위만 보였으나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주변의 풍광이 매우 뛰어나다. 정상에 마침 성당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는데 뭐 이렇다 할 기운을 느끼지 못하여 바로 나와서 명상할만 적당한 곳을 수배하여 앉아서 눈을 감았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상상한 것보다 마음의 집중도 안 되고 초월적인 힘도 느끼지 못했으며 신의 목소리는 커녕 어디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난 역시 하근기인가 보다. 이 좋은 종교적인 성지에 와서 내면에서 겨우 개 짖는 소리나 들리니 이런 개망신이 또 어디 있나! 혹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 워밍업 하느라 이러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다시 마음을 집중하여 명상에 몰입하니 비로소 뭔가 다이내믹한 에너지가 몸 안으로 들어 오며 초월적인 의식 상태에 진입하려고 한다. 오! 이제야 드디어 발동이 걸렸구만. 그런데 그 순간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그만 내려가자고 한다. 엥? 이제 애써 불길을 살렸더니 탄불을 꺼트리네. 시나이산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그런데 가끔 시나이산이 생각난다. 왜일까? 비록 그곳에서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으나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영적인 기운이 이제 와서 느껴지니 묘하다.
눈으로 보는 멋진 풍경과 귀로 듣는 아름다운 음악은 그 당시는 매우 감동적이나 시간이 지나면 대개 잊혀지며 다시 사진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야 그 감흥이 살아난다. 그러나 마음이 닿아서 얻은 느낌은 비록 보거나 들을 수는 없으나 그 감동은 지속적이고 더욱 강력하며 또 쉽게 잊혀지지 않으며 또 언제라도 마음에서부터 끌어내면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다. 대부분 오감(五感)에 익숙해진 일반인은 격동적인 감각에 끄달리는데 진정한 풍광과 감동은 마음의 눈을 빌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펼쳐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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