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하던 1월에 침묵의 성자인 마하리쉬가 평생 수행하였다는 영산(靈山) 아루나찰라산을 방문하기 위하여 남인도로 향했다. 그는 설교가 아니라 침묵의 파장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변화시켰던 엄청난 영적 파워를 소유하였던 힌두교성자이다.
이는 불교에서의 독각승에 해당할 수 있는데 내가 추구하고 있는 수행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예전부터 찾아오려고 하였으나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지라 코로나 시국이지만 달려갔다. 우리나라는 한 겨울인데도 이곳은 여름철이라서 더웠다.
그곳 아쉬람에는 항상 많은 사람 특히 외국인들이 북적거렸으며 끊임없이 힌디어 방송이 들렸는데 좌선하고 있으니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마음의 집중이 기가막히게 잘 되며 또한 마음이 너무 평온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그리 몰려오는 이유가 있었구먼….
드디어 아루나찰라산을 올라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산 전체가 돌로 덮여 있다고 하니 한번 맨발로 정상까지 가보려고 한다. 왕복 3시간 정도 거리이지만 낮이면 뜨거운 햇빛에 돌이 달궈질 수 있으니 아침 7시에 출발하였다.
아쉬람에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천하의 영적인 돌산을 맨발로 걸으니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기운이 매우 감미롭고 강력하다. 그 중간에 있는 마하리쉬가 수행했던 동굴에 들러서 우선 잠시 참배만 하려고 하였으나 앉아 있으니 그 동굴의 기운이 너무 좋아서 그만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결국 그로 인하여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왔다.
정상에서 명상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앉아있던 평평한 바위가 매우 뜨거워졌다. 오전인데도 벌써 햇빛이 이리 뜨거워지니 그만 서둘러서 하산하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하산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전부 돌로 덮여 있는데 이미 돌이 뜨거워져서 맨발로 밟으니 이건 발바닥이 돌판구이가 될 판이라서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다. 내리막길이 워낙 험하고 위험하여 후레쉬나 스마트폰도 없으면서 밤을 기다리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한쪽 발은 풀을 뜯어서 발을 감싸고 더불어 지니고 있던 손수건으로 다시 묶어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다른 쪽 맨발의 통증은 도저히 감당키 어렵다. 실망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늘에 누워서 “수행동굴 참배로 인하여 이리 된 것이니 마하리쉬여! 한번 도와 주시오”하고 빌었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마침 군용 모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모자를 뒤집어서 발을 집어넣어니 정확하게 들어맞아 고정되는지라 벗겨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돌을 밟으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데 워낙 가파른 돌길이라서 미끄러질까 봐 너무 다리에 힘을 주며 내려오는 바람에 체력이 완전히 소모되어 탈진 상태이다. 마침내 땅에 쓰러져 드러누우니 너무 편안하고 졸리며 더 이상 몸을 다시 일으킬 기력조차 이젠 없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아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순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떠오르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힘을 내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렸지만 해가 저물어가니 이제는 미끄러져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든지 말든지 모든 것은 신불의 뜻에 맡기고 과감하게 내려왔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아쉬람에 간신히 당도하니 6시가 가까워졌다. 1시간이면 내려올 거리를 거의 7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그리 개고생을 하였으나 지금 당장 다시 가보고 싶은 수행처 1순위를 꼽으라면 당연히 아루나찰라산을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다. 히말라야산이나 그랜드 캐넌처럼 웅장하지는 않으나 그 작은 산에 뿜어 나오는 영적 기운과 포근함은 뭇 산들이 견줄 바가 아니다. 그리고 현재는 마하리쉬의 수행동굴이 개방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른 곳처럼 갑자기 출입을 금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적 성취를 이루면 세상에 이름을 크게 드러내어 교파를 만들고 이와 더불어 세력 확장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마하리쉬는 평생 한곳에 은둔하였고 진정한 수행으로 쏘아 올린 꺼지지 않는 영적인 조명탄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혔으며 수행자들은 이 빛에 의지하여 외롭고 힘든 수련에의 길을 무너지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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