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말에 백두산을 찾아 갔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이도백하역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깡촌에 불과하여 변변한 숙소 조차 별로 없었다. 다음 날 숙소에서 지프를 대절하여 최대한 백두산 근처까지 접근하였다. 초 여름에 접어드는데도 눈이 무릅까지 쌓여 있었으나 마침 그 곳에서 긴 장화를 대여해 주는 상인이 있는지라 이를 빌려서 천지로 향했다.
산으로 올라가니 이정표도 없고 등산하는 사람도 없는지라 중간에서 길을 헤매다가 마침 쌓인 눈에 희미한 발자국이 보이길래 그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천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너무도 장엄하고 신비롭고 신령스러워서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후로 해외 명산대천을 많이 다녔지만 아직까지 그 당시에 느낀 백두산같은 감흥을 주는 산은 없다. 단지 산세가 경이롭게 아름답거나 알 수없는 강렬한 기를 느낄수 있는 산은 많았지만……..
아직도 빙판이 되어 있는 천지를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비록 얼음으로 덮혀 있지만 웬지 말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웬 조선족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면서 이르길 더 이상 가면 북한이며 가까이 접근하면 북한군이 총을 발포할 수도 있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다시 돌아와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과연 천하의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다. 그 기운이 너무도 맑고 좋아서 다음에 날씨가 풀리는 계절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와서 여기서 비박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몇 년전에 다시 백두산을 찾았는데 이도백하역은 서울역 보다 더 크고 멋있게 건립한 장백산역으로 대체되었으며 예전에 걸어서 올라갔던 기나 긴 계단지옥은 이미 폐쇠되고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와 더불어 써틀버스를 타고 펀하게 천지의 정상 부근의 주차장까지 도착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최근에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인하여 생활에 여유가 생기며 엄청난 중국관광객이 백두산으로 몰려 들었다. 다행이 써틀버스가 30초에 한 대씩 운행하니 긴 줄에도 불구하고 별로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천지는 과거에 내가 알던 천지가 아니었다.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천지는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를 치고 감시원과 더불어 cctv를 설치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3일을 연속하여 천지를 찾았는데 이틀은 안개에 휩싸여 천지는 몇 시간나 지나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우리나라 단체관광객들의 괜히 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나 나는 단 하루 선명하게 보이는 백두산을 접하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천지는 예전 같지않고 별 다른 흥취가 없다. 산의 기운도 인간의 탁한 기운에 때가 묻는 건지 아니면 환경이 바뀌니 내 마음이 바뀐건지는 알 순 없지만 아뭏튼 3일 동안 천지에서의 명상은 예전의 30분만 못하였다. 공부이든 수행이든 시간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집중이며 시간은 단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니 과거를 회상하면 무엇 하랴! 물이 얼음이 되었다고 물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외형은 변하되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이니 백두산 천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혼탁한 기운을 씻어 줄 것만 같은 푸른 천지의 물빛을 가슴에 담고 천지를 향해 합장하며 하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