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년 전에 티베트를 노퍼밋으로 간 적이 있다. 왜냐하면 방문목적이 관광이 아니라 수행이었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데리고 다니면 시간제약을 받고 또한 그것은 단지 관광이지 수행을 마음놓고 제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수소문 끝에 유일하게 베이징에서는 라사행 열차표를 판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에 입국하여 베이징역에서 좌석표를 구매하려고 하니 침대차는 이미 오래 전에 매진이며 좌석표 밖에 없다고 한다. 심란하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2박3일을 과연 티베트 라사까지 앉아서 갈 수 있을지 혹 중간에 검문에 걸려서 쫒겨나면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될텐데…..
이왕 왔으니 시도할 수 밖에 없는지라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내에서 2번의 신분증 검사가 있었으나 여권을 보여주니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중간에 다시 무슨 용지를 나누어 주며 자신의 신상정보를 기재하고 역무원에게 제출하라고 하였다.
내 이럴줄 알고 혹시 몰라서 베이징에서 일부러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으로 숙소를 정했으며 또 그 숙소의 주소를 메모하여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역무원이 다시 찾아와서 역무실로 가보라고 한다. “아…이젠 틀렸구나. 드디어 쫒겨나는가?” 하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가보니 주소란에 주소가 틀렸다고 하여 확인하니 내가 잘못하여 한 글자를 빠뜨린 것이다. 휴….
하루종일 딱딱한 열차의 좌석에 앉아 있자니 온몸이 쑤시는데 또한 두 좌석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어서 다소 불편하다. 그런데 어느 역에서 모녀가 좌석으로 다가와서 그 중 젊은 아가씨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에 내 왼쪽어께가 무거워지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그 여자가 자기의 머리를 내 어께에 눞히고 자고 있지 않은가?
술에 취하거나 약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금방 일어나리라 생각되어 민망해할까봐 그대로 있었는데 이건 거의 15분이나 지나도 안일어 나길래 맞은 편에 앉아있는 그 여자의 모친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내니 그제서야 자기 딸을 흔들어 깨운다.
나는 여태 살면서 가끔 지하철, 버스, 항공기, 공공장소 등에서 공공연하게 여자한테 성희롱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같은 평범 내지 평범이하의 인간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탄트라 즉 뚬모수행을 하다보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 여자들은 현재의 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먼 전생에서부터 와서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수행적인 기억이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자기도 모르게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였나 보다.
현재 나는 정식 뚬모수행자도 아니고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자도 아닌지라 혹 나를 찾더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지 이번 생은 방구석에서 홀로 고요하게 명상이나 하며 지낼 것이며 명상으로 인한 내 침묵의 파장으로 조금이나마 주변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랄 뿐이다.
라사에 도착하여 밤새도록 고산병 증상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다음 날 점차 좋아졌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산에 이어 두 번째로 느끼는 끔찍한 고통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하는 티베트는 참으로 신비하였으며 불심(佛心)이 절로 샘솟는다.
포탈라궁에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각 장소에는 안내원이 지키고 있었으며 불상이 있는 내부는 들어오지 말라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으나 운좋게도 어느 안내원이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들어와서 기도하라고 배려해 주었다. 멀리서 지나가며 처다보는 불상과 막상 불상 바로 앞에 앉아서 참선하는 것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해발 4,718m에 위치하는 남쵸호수에 가서는 너무도 푸르고 신비한 호숫물을 넋을 잃고바라보다가 명상에 들어가니 마치 천상의 호수에 와 있는 듯 하였다. 이 순간만은 제석천왕도 안 부럽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는 “한 편의 질 좋은 야동은 열 편의 명화가 안 부럽다”고 하였는데 나 또한 하나의 질좋은 호수가 열 개의 호수보다 낫다. 여태 세계 각국의 많은 호수를 보았지만 이 남쵸호수에 견줄만한 곳은 아직 없다.
시가체에서는 바람이 전하는 무상설법을 끊임없이 들었으나 그 당시에는 내공이 약하여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았으며 단지 황홀감에 빠졌을 뿐이었다.
이번 생은 웬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 삶을 리모델링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다음 생에서는 처음부터 진정한 수행자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남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죽음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버나드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하였지만 나는 아마 “쫒기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이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