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트라는 육체적인 건강과 더불어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수행이다. 인도에 가면 탄트라 즉 밀교 수행을 위해 거의 20년 가까이 머물고 계시는 스님들이 많고 근래에는 더욱 탄트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흔히 탄트라를 섹스와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탄트라에는 파드마삼바바로부터 티벳으로 전해진 쌍신수행법이 있다. 그러나 천년 전 밀라레빠는 오직 동굴에서 홀로 철저하게 고행하는 수행만을 강조하였으며 현재의 달라이라마 또한 쌍신수행을 언급한 적이 없다. 추측건대 이는 절대로 수행이 부족한 하근기가 흉내 낼 일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정상적인 어느 종교에서나 대부분 고행을 강조한다. 내 얕은 경험상 고행이야말로 수행의 밑거름이며 욕망을 조복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대락(大樂)은 육체적인 고행에 비례하여 찾아오니 붓다는 결국 중도를 말하였으나 고행을 안 해 본 자가 어찌 중도를 입에 담을 수 있으랴!
탄트라 특히 뚬모수행을 오래 하다가 보면 자신은 물론이거나와 자신의 에너지로서 상대방에게도 지복감과 초자연적인 힘을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 생긴다. 물론 이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나 또한 비록 수행 경력은 짧으나(대략 20년) 최근에 나의 에너지를 타인이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몇 달 전 세계 각국의 명상수행자가 모이는 인도 다람살라에 갔다. 그곳의 불교사원은 우리나라와 달리 양쪽으로 라마승이 5명 내지 6명씩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예불을 진행한다. 나는 예불이 끝날 때까지 눈을 뜨지 않고 명상하는데 눈을 뜨면 항상 수행자들이 내 옆에 붙어앉아 있었으며 심지어 어떤 젊은 수행자는 하필 내 앞에서 민망스럽게도 나한테 안기듯이 딱 붙어 있기도 하였다. 이는 나한테서 어떤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종교집단을 불문하고 교주나 스승의 영적인 능력을 느끼고 한번 매료되면 그 중독성이 너무 강하여 광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미 매스컴에서 연일 그 사람의 비리와 죄악을 폭로하여도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이미 받친 상태이니 이제 와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현재까지 이러한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추종자를 교묘하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삼은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물론 엄청난 영적인 능력을 가진 것이 틀림없으나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절대권력이 부패하기 마련이듯 자신을 신으로 아는 추종자들에게는 자신의 한 마디가 바로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게 되니 못할 짓이 없게 되며 이에 자만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영적인 능력으로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근래에 가장 뛰어난 성자라고 추앙받던 크리슈나무르티는 가장 친한 친구의 부인과 20년 동안 혼외정사를 가진 것이 알려져서 물의를 빚었다.
신에 대한 헌신의 증표로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이기심과 소유욕을 버리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려면 몸을 바쳐야 한다는 둥 탄트라를 배우려면 그건 섹스가 아니라 탄트라의 가르침이니 육체관계를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는 둥 이런 종류의 말을 지껄인다면 모두 사이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탄트라는 스승과 제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못된 자가 종종 있다. 흔히 자기에게 더 높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면 모든 세속적인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탄트라 스승과의 쌍신수행으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자를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 여성경험자들은 입을 모아서 거기에 탄트라적인 요소는 없었고 단지 탄트라를 빙자한 동물적인 욕구충족 뿐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관리대상종목이니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수행이란 남다른 능력을 가지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이다. 한때 비범하고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에 비바람을 맞으며 산천을 떠돌았으나 진정한 수행은 에고를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살려고 하는 보리심을 기르는 것임을 이제야 절실하게 깨우쳤다. 중생구제, 제자양성, 명성 다 좋으나 나는 그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렁이같이 바닥을 기면서 내리고 또 내리는 공부를 하다가 남은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