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천제단에 올라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머리 위로 작은 돌덩이를 마구 던지는 것 같아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단지 하늘에서 구슬만한 우박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으며 곧이어 천둥과 번개 그리고 벼락이 내리쳤다. 이건 천지개벽할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다들 혼비백산하여 하산하였으며 나 또한 그 순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여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이렇게 구차스럽게 살게 할거면 차라리 당장 내 목숨을 거두어 가라고 하늘에 호통(?) 아닌 투정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이 쪽팔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을 꼭 감고 있어도 번개나 벼락이 내리치면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곧바로 이어지는 천둥소리에 비록 몸은 앉아 있어도 마음의 집중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이 산꼭대기에서 벼락을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머리속을 가득 채우는지라 벼락이 멈출 때까지 20분을 내내 두려움에 떨면서 앉아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발버둥쳐도 그건 생각일뿐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거밖에 안되는 놈이라는 것을 확인하니 정말 초라하고 비참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대고 객기를 부렸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면 평소 생각과 같이 죽음 앞에서 담담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초탈했던 시인 도연명조차 자신의 시에서 죽음은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이라서 두렵다고 솔찍하게 술회하고 있으니 보통사람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생사일여(生死一如)…. 삶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누구나 알아도 막상 죽음을 맞이하면 그러한 생각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절망감에 휩싸인다.
나는 그 후로 명상할 때마다 항상 죽음을 화두로 삼고 있었는데 근래에 드디어 나의 수행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3달 가까히 배가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아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죽과 약으로 버티었는데 그 통증의 횟수가 늘어나며 급기야 2주 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어야 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추측건대 이건 위암 말기다. 나의 모친도 위암으로 별세하셨으니 가족병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 버틸 수가 없어서 곧바로 연대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갔다. 가기 전에 수술을 받고 좀 더 살지 아니면 깔끔하게 죽음을 기다릴지 미리 고민하고 있었다. 위내시경 검사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조직검사를 해야 된다고 말한다. 7일 뒤에 결과를 들으려고 병원을 찾아갔다. 결과는 내가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으나 검사를 하였으니 일단 확인은 해야되겠기에 내방한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으니 의사가 차트를 보면서 이르길 “검사결과가 나오긴 했는데….”하면서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린다. 그래서 속으로 “이미 다 알고 왔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라. 이 넘아”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의사가 하는 말이 “아무 이상 없네요”라고 한다.
나 원참….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쁘기 보다는 오히려 기분이 씁씁해졌다. 그래서 이상이 없는데 왜 지금까지 그리 아팠냐고 따지듯이 물으니 내 태도에 의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마 이상없다는 말을 해주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고 의사선생님! 감사합니다”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으리라.
그 후로 또 다시 약 한첩 먹지 않았는데 10년 이상을 종종 앓아왔던 위장병이 언제 그랳냐는 듯이 기적적으로 진정되었다. 이 넘의 명줄은 참 질기기도 하다. 얼마나 더 고생을 하며 버터야 관짝에 들어가서 편하게 쉴 수 있을런지….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라 천하의 낙관론자이나 수행길에 들어서고 나니 고행을 낙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지라 삶에 대한 애착이 점차 약해지는 듯 하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머리로써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