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수련 기간에 있어서 체험이 고조되기 시작하면 어찌 쿤달리니가 다루지 못하는 유동(流動)을 개시하나 그것을 전부 장악하여 그 쿤달리니로 하여금 비륜(秘輪) 안으로 확장되도록 할 수 있다. 이들 에너지를 전부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 매우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며 체험은 곧 더욱 많은 환희에 이르게 되는 바 이런 종류의 환희를 운용하면 쿤달리니와 無二의 우주적인 실상(實相)이 융합하여 하나가 되는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 이와 같이 되면 가히 수행으로써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며 또한 가히 심령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 외에 일반적으로 성(性)이 고조하는 때에 나오는 정액은 무릇 중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위 남성과 여성에 대하여 말하면 일반적인 성경험으로부터 체험하는 바의 에너지와 大樂은 모두 중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응당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성적인 고조가 오르가즘을 생산하는 바이나 쿤달리니는 곧 중맥의 외부를 건드려서 大樂을 생산하는 바이다.
무릇 탄트라 요가적인 논리로 말하면 만일 쿤달리니가 중맥의 외부를 건드리면 곧 능히 이런 종류의 大樂이 충분히 생산된다는 것은 추호도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마땅히 쿤달리니가 중맥 내에서 유통하는 때에는 장차 불가사의한 大樂이 생긴다. 곧 소유하는 풍식(風息)을 중맥으로 끌어들이면 능히 비할 데 없는 지극한 大樂적인 깨달음이 많이 생긴다.
풍식(風息)을 중맥으로 끌어들여서 아울러 이런 종류의 大樂이 생기게 하려면 주로 선정(禪定)의 힘을 투과하여 달성하기를 요한다. 일반 사람들은 성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인하여 쿤달리니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오직 졸화요가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능히 이를 자제하고 선정(禪定)의 힘을 유지하기를 요한다. 그러다 보면 이로 인하여 능히 졸화요가적인 수행에 많은 성취가 있게 된다.
어찌 이 선정(禪定)의 힘이 미약하여 형태가 일반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사람은 장차 발현하더라도 반드시 강렬한 大樂적인 에너지가 발생되기 어렵다. 풍식이 중맥에 융합하기 전에 곧 쿤달리니에 이르는 체험이 통제를 잃어버리고 유실(流失)되는 수행자는 반드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올라간 에너지를 중맥 안으로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종객파대사가 지적하길 “ 선정(禪定)을 지속하는 힘이 부족한 수행자는 반드시 발현이 결핍되며 쿤달리니는 아래로 유동(流動)하여 넘쳐나니 이로써 통제하기 어렵게 되는데 더욱이 그것이 흘러서 마땅히 제륜(臍輪) 아래에 이르면 이로써 더욱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어느 때 에너지의 유동적인 방향이 역전하기 시작하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이 반드시 중요하다.
이는 단지 하나의 에너지가 올라가서 대령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드시 그 두르는 것이 모든 신경계통에 이르러야 한다. 만일 에너지가 어느 한곳에서 변하여 지체하게 되면 이는 반드시 위험하며 또 아울러 반드시 질병을 유발한다.”라고 하였다. 무릇 종객파대사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이 하나의 충고를 주는데 이로 인하여 우리는 응당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